명시감상1 캐비닛 속의 연가 외 2편 / 이중동 캐비닛 속의 연가 그는 어느 귀퉁이에 서 있었지 흰 벽을 배경삼아 버티고 선 당당함이 견실한 남자를 닮았다고 생각했지 내가 그의 몸을 더듬으며 들어가 누웠을 때 나는 태아처럼 편안했어 지상에 의지할 한 평 다락도 없었을 때 어둡고 차가운 몸뚱이를 그가 알아주었지 팔다리를 꼬거나 이마를 대고 누우면 비좁던 어둠도 천천히 평수를 늘려갔지 그는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주인이 되었지 그의 품 안에서 익숙해진 고독을 견디면서 나는 애벌레처럼 우화를 기다리고 있었어 오랜 침묵과 끊어진 인연들은 나를 점점 순종의 계절로 넘기고 말았지 언제부턴가 그는 내 안의 올가미가 되어 나의 숨결마저 조이고 있었지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귀퉁이에 서 있을 뿐 나는 캄캄한 어둠이 좋았지 식후 30분 뱀 한 마리 동굴을 기어 나와 독기.. 2020. 6. 18. 이전 1 다음